도심의 뒷골목, 오래된 건물 사이에 낮에도 어둑한 작은 가게가 있었다. 이름은 &squot;그림자 가게&squot;.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의 그림자를 팝니다. 단, 거래는 단 한 번뿐.”

호기심 많고 조금은 외로운 직장인 수연은 어느 날 그 가게를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가게 안은 온통 그림자로 가득했다. 벽에는 사람 모양의 어두운 형체들이 액자처럼 걸려 있었고, 주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자는 당신의 과거와 감정을 기억합니다. 팔면 그 무게는 사라지지만,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수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5년 전의 ‘그림자’를 팔기로 했다. 그때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좌절.

거래가 끝난 순간, 마치 몸이 가벼워진 듯했다. 그날 이후, 수연은 이유 없는 불안감이나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안해지고, 웃음도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무언가 빠져나간 듯한 공허함이 찾아왔다. 과거의 고통이 사라지니, 지금의 감정도 희미해진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평평해졌다.

다시 그 가게를 찾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수연은 이제 안다. 고통도, 상처도 결국 나를 만든 조각들이란 걸. 그녀는 오늘도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아직 남은 그림자에게 속삭인다.

“우리, 함께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