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용한 마을에 이상한 나무가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벚나무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기억나무”라 불렀다. 이 나무 아래에 어떤 추억을 묻으면, 봄이 되면 그 기억이 꽃으로 피어난다고 했다.

중학생 민재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기억나무를 찾았다. 할머니는 생전에 늘 말하곤 했다.

“슬픈 기억도 흙에 묻으면 언젠가는 꽃으로 돌아오지.”

그날 민재는 편지를 하나 써서 나무 밑에 묻었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웃는 얼굴이 그리워요. 다시 한번만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기억나무 한쪽 가지에서 혼자 다른 색의 꽃이 피어난 것이었다. 분홍빛 벚꽃들 사이에 단 하나, 푸른 빛을 띤 꽃.

민재는 그 꽃 아래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민재, 잘 자라고 있네. 이제 괜찮아.”

그날 이후, 기억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모두가 하나씩 기억을 심기 시작했고, 나무는 해마다 다른 색의 꽃을 피워냈다. 누군가는 첫사랑을, 누군가는 용서를, 또 어떤 이는 작별의 인사를 심었다.

시간이 흘러 민재는 어른이 되었고, 언젠가 아이의 손을 잡고 기억나무 앞에 섰다. 아이가 물었다.
“아빠, 이 나무는 왜 이렇게 예쁜 꽃이 많아?”

민재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여기 잠들어 있어서 그래. 아주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었던 마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