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작성자 진두광 작성일 2025-05-19 조회수 12
1층 우편함들 사이에는 유난히 낡고 찌그러진 빨간색 우편함 하나가 있었습니다. 다른 우편함들은 번듯한 새것이었지만, 그 빨간 우편함만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죠. 주민들은 이 낡은 우편함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아주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매일 밤, 아파트 단지가 조용해질 무렵이면 그 빨간 우편함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낡은 우편함 자신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편지들을 받아들이고 배달하면서, 빨간 우편함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되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빨간 우편함은 매일 밤 자신이 보관했던 편지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조용히 혼잣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애틋한 고백, 멀리 떠난 가족에게 보내는 그리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안타까움 등, 수많은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은 낡은 우편함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